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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에 오늘' 에 대하여

개인적 이야기들, 예술, 영화, 말, 그리고 역사가 공적인 전시회에서 함께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어제 안에 오늘: 잊혀진 전쟁, 살아있는 기억”은 바로 그런 흔하지 않은 예입니다.  이 전시회에서 그 모든 요소들은 관객참여적인 멀티미디어를 통해 한국사와 미국사, 그리고 재미동포들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한국전쟁을 에워싸고 있는 침묵을 거둬내는 대화의 경험으로 엮어졌습니다.  재미동포들의 기억의 장인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갈등의 경험, 은폐되어온 개인과 가족의 유산을 탐구하며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분단을 종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이 전시회는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행한 역할과 전쟁 생존자들의 경험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 속에서 우리가 갖는 공동의 이해관계의 인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은 엄청난 참화였습니다.  미국과 남한, 그 외에도 열 여섯 개국이 참여한 연합군과 북조선과 중국은 유엔이 소위  “치안활동”이라 명명한 전쟁을 치뤘습니다.  겨우 삼년간의 전쟁의 결과는 삼백만의 민간인 사망, 백이삽만에 가까운 전투병 사상, 한반도의 자연자원과 사회적 생산기반의 고갈,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한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낸 분단이었습니다.  전쟁이 중단되었을 때 한반도는 잿더미로 화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잠정적이라고 여겨진 휴전협정 체결 이후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평화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고, 전쟁 주요 상대국의 한편인 남한과 미국, 다른 한편인 북조선 간에 관계의 정상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 재발의 가능성이 세계 도처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손실이 초래되었고, 전쟁 이후 들어선 냉전체제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형성에 중심적 역할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한반도에서의 “치안활동”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전쟁은 기껏해야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생존자인 재미동포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한국전쟁은 드러내놓고 표현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고통과 분열의 원천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과거사에 대해 드러내놓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것은 이 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 여기는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에 위배되는 것이며, 재미동포의 공동체에 아직도 남아 있는 냉전적 이념갈등을 자극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고, 생존자들 스스로도 아직 화해에 도달하지 못한 깊은 개인적 고통에 자식들과 이후 세대를 노출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침묵은 부정과 무기력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침묵은 생존자들이 과거의 상처를 치료할 기회를 박탈하고, 젊은 세대들이 가족의 뿌리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침묵은 재미동포 사회가 한반도 내에서나, 미국정부와 북조선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갈등의 효과적인 종식을 위해 발언하는 유효한 목소리가 되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공동체 내부의 화해를 일구어 내는 것을 방해해왔습니다.  저희 “어제 안에 오늘”의 기획자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억과 대화의 공적영역을 제공하는 것이 치유와 화해와 평화증진의 수단으로 그 같은 겹겹의 침묵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어제 안에 오늘”은 보스턴 칼리지 심리학과의 임램지 교수가 주관한 “’한국전쟁에 대한 재미동포들의 기억’ 구술사 기획”에 채록된 개인들의 경험담에 바탕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부모세대가 한국전쟁 중 경험한 내용을 더욱 심도있게 이해하려는 몇몇 젊은 세대 재미동포들의 개인적인 시도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진 이 구술사 기획은 현재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세 세대의 재미동포들로부터 약 서른여섯 편의 구술사를 채록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구술된 경험담들은 재미동포들이 이 끔찍한 내전이자 국제전의 참화를 공적인 방식으로 기억한 첫번째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이 경험담들은 또한 한국전쟁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삶에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층위의 유산을 보여줍니다.  이 구술사들은 미국의 역사기록과 대중의 의식에 존재하는 무관심에 도전하고 한국전쟁을 가시화합니다.

이 전시회는 예술가 임율산, 황인주, 유지영과 다큐멘터리 감독 디앤 볼셰이 림, 역사학자 여지연, 그리고 기획감독 임램지가 이년에 걸쳐 협동작업을 한 결과입니다.  참가자들은 이 전시회 기획에 참여하기 전에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쟁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작업한 경력이 있고 그 구술사 작업에 대해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작업이 진전되어 나가면서 에리카 조, 홍석종, 민용순 등의 예술가와 그레이스 조, 김호수, 이현정 등의 연행예술가, 그리고 그들의 공연감독인 캐롤리나 맥닐리, 번역을 맡은 전승희, 교육용 자료 제작을 맡은 임월산, 그리고 웹디자인과 기술자문을 맡은 설영 등이 우리의 초대에 응해 동참했습니다.

이 기획의 초기단계에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의 차이는 물론이려니와 우리의 다양한 전문적 배경, 일하는 방식, 그리고 심지어는 언어 – 텍스트적, 시각적, 공간적 언어 등 – 가 우리에게 힘겨운 도전이 되리라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회를 집단적으로 개념화하고, 구상하고, 집행하기로한 중대한 결정을 했습니다.  정확히 바로 그런 차이들 때문에 공통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에겐 핵심적이었습니다.  대화라는 개념으로 전시회를 엮어가는 모티브를 내놓기까지 6개월 간의 집중적이고 긴 토론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구술사 기획 참여자들의 회고와 한국전쟁이 만든 역사적 지형 속에서 틀지어진 우리의 반응이 어우러진 다양한 목소리 간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는 채록된 구술사의 발췌문, 설치예술, 연희예술, 다큐멘터리 영화, 기록 사진, 역사 텍스트의 형식을 빌려 이루어졌습니다.  각각의 요소들은 전시회의 예술적 전체를 구성하며, 동시에 그로부터 자신의 실체를 끌어왔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제 안에 오늘”을 관람하시는 여러분들이 관객참여적인 설치예술품들에 참여함으로써 기억에 관한 우리의 대화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 안에 오늘”은 생존자들의 기억과 그같은 기억을 널리 공유하려는 생존자들의 용기를 긍정하며 젊은 세대에게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낯선 하나의 역사로 연결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갈등으로 점철된 지구화의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전시회는 다른 갈등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적대를 해소하는 주된 수단으로 대화를 권장하며, 한국전쟁의 진정한 종식을 촉구합니다.

“어제 안에 오늘” 기획팀은 구술사 작업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이 전시회를 이루어 내는데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장소암, 전순태, 최경숙, 주은지, 김선희, 이경희, 이민용, 문오성, 박기식, 박기춘, 박송자, 그리고 김원엽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들의 목소리 덕분에 재미동포 공동체 내부와 나아가 미국 사회 전체에 꼭 필요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으며, 우리 내부와 한인들 사이, 그리고 전쟁에 의해 분열된 모든 공동체에 가교를 놓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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